10월 23, 2020

사형제도의 목적 – 정치적 목적 : 서양의 경우

정치적 목정으로 사형제도가 사용된 것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테네의 소크라테스 추방일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우려한 아네테 사회의 권력층에서

그에게 여러 가지 죄를 적용하여 사형을 선고했다.

이는 소크라테스에게 벗어 날수 없는 함정으로 작용 하였는데,

선고에 저항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고 저항하여 달아난다면 스스로 추방되는 것과 다름없이

그가 가진 영향력을 모두 잃게 되기 때문이다.

로마의 경우에는 국가의 성장에 따라 내부의 권력 간의 충돌, 즉 내전의 위협이 항상 존재해왔다.

때문에 반역, 반란에 대해 최고형인 사형을 집행하였다.

사형은 직접적으로는 죄인의 목숨을 빼앗은 형벌이지만

그 외에도 사형의 집행을 공개적으로 행함으로서 권위를 드러낼수 있는 수단이다.

또한 경고의 의미로서도 사용되었다.

국내의 문제 외에도 로마는 다수의 식민지에 대해서도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사형제도를 사용하였다.

예수의 경우에 식민지의 질서를 저해하는 위험인물로 지정되어 사형을 집행하였는데

사회분란의 주동자를 신속하게 제거하고 식민지에 본토의 통제력을 공고히 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중세의 사형은 그 시대의 이념, 즉 기독교 윤리와 신분사회질서의 유지를 위해 사용되었다.

왕과 귀족은 하층민에게 반역이나 항명 등을 이유로 사형을 집행할 수 있었다.

기사 또한 자신의 봉토에 속한 하층민에게 자유롭게 사형을 집행 할 수 있었다.

교회는 성경을 통해 ‘신의 말씀’을 독점했다.

중세의 시대정신은 기독교 윤리에 기반하기에 성서는 법과 같은 효력을 지녔었다.

라틴어로 기록 된 성서는 교육을 받지 못한 자는 읽을 수 없기에

자의적으로 성경을 해석하여 적용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하나의 진리만을 인정하는 기독교의 수직적 구조는 중세에는 권력 자체로 기능하였는데

그 근거로 이용되는 성경에 대한 접근은 소수만 가능하였기에 문제가 된 것이다.

현대까지 전해 진 다양한 사형집행 도구 중에 상당수가 중세에 개발되었다.

형벌과 사형의 목적이 수직적 구조의 유지에 있기 때문에 대중들의 두려움을 목표로 하였다.

쥐를 사용해서 살아있는 죄인의 신체를 갉아먹게 하거나 출혈을 유도하여

극적인 두려움과 고통을 주는 방법이 선호되었다.

권력유지 수단으로서의 사형제도가 자의적인 해석을 통해 그 집행 또한 제한이 사라짐에 따라

중범죄가 아닌 일반적인 범죄에도 사형집행이 이루어 졌다.

현대인의 기준에서는 대단히 가혹하며 형벌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상태이지만

권력의 근거인 수직적 기독교 윤리에 대한 접근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사형을 통한 지배구조의 유지라는 목적은 잘 이루어 졌다.

하지만 인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등장함에 따라 권력과 사형의 관계는 그 권위에 도전을 받는다.

중세에서 벗어나 인간 자체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면서 사형제도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또한 일반적인 범죄에도 사형을 집행하며 공포로서 군림하던 권력에 대해서도

비판 및 회의적인 시선이 이어졌다.

사형의 권위가 무너짐에따라 그에 의존하던 권력또한 공포를 심어줄 수단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는 기존 권력의 붕괴로 이어졌다.

기존의 권력이 붕괴하고 혁명을 통해 새로운 권력이 등장했다.

시대가 변해갔지만 사형은 새로운 방식의 도입으로 권력과의 유착을 이어갔다.

기존의 유혈이 낭자한 사형은 사라지고 죄인의 인권을 고려한 방식이 등장하였지만,

이는 위에서 언급했던 단두대처럼 사형집행의 편의성을 증대하여 더 자주 사형이 집행되었다.

권력이 교체되는 시기의 혼란함 또한 빈번한 사형집행을 불러왔다.

현대에 들어 사형제도는 또 한번의 변화를 맞이한다.

두 번의 세계대전 이후 인권의식이 성숙함에 따라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공포통치의 수단으로서의 사형은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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