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6, 2020

사형제도의 역사 – 동양의 근대 및 현대의 경우

명나라는 과거 수, 당을 거치면서 완화되었던 사형제도가 다시 강화되었다.

과거에는 법률로 사형을 제한하였으나 명나라 시대에는 죄인의 가죽을 벗겨서

그 속을 볏짚으로 채워 전시하는 형벌이 새롭게 등장하고

목이 잘리지 않아 15번이나 칼로 내리쳐야 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청나라 대에 들어서 다시 사형을 참과 교로 제한하여 형벌을 완화하려 하였으나

후에 명나라의 사형제도를 받아들여 명나라 시대 보다 더 잔혹한 사형제도를 시행하였다.

이 때의 기록을 보면 죄인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소리를 지르자

이를 꾸짖으며 칼로 100회 이상 베었다고 한다.

청말에는 변법수율시기를 거쳐 사형에 대한 개혁을 통해 사형에 대한 실질적인 제한이 이루어 진다.

잔혹한 집행은 대거 삭제되고 참과 교의 잔혹함도 줄어들었다.

이러한 개혁이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이후로도 잔혹한 형벌을 다시 채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할 수 있다.

현대에 들어 중국은 여전히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이다.

특히 마약범죄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여 외국인 이라도 강경하게 형을 집행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사형정책에 대해 인도주의 및 형벌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있는데

사형정책이 중국사회의 특수성, 즉 공산당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은 명나라의 법을 받아들여 대명률이라 칭하고 이를 일반법으로,

조선의 법률을 특별법으로 적용하였다.

사형제도 또한 명과 같고 죄인이 사면되어 사형을 받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대명률에 명시된 거리만큼 걷게하여 유베를 보냈다.

사형수는 둘로 나누어 일반사형수는 추분 이후, 입춘 이전의 때에 집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반면에 불효, 반역 등의 십악에 해당하는 범죄자와 강도범은 즉시 사형을 집행하였다.

조선말에는 능지형과 참형을 폐하여 사형제도의 잔혹성을 완하 하려 하였으나

이후 한일합방을 거쳐 일본형법을 적용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사형의 집행이 증가하였고 집행의 방법은 교수형으로 고정되었다.

대한민국 입시정부에서는 과도한 사형집행과 그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 사형제도를 폐지 하였으나

일제시대의 사형제도는 해방이후 미군정령에 의해 유지되게 된다.

이후 군부독재 시기를 거쳐 민주사회에 이르러 현재에는 사형제도는 남아있으나

10년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실질적인 사형폐지 국가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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